year | 2017 |
city | 부산 |
type | 리노베이션 |
used | 단독주택 |
site area | 373.00m² |
building area | 120.56m² |
project area | 195.46m² (GFA) |
construction | 동성건축 |
furniture | CTB furniture |
photo | 석준기 |
data | download pdf |
시골생활의 시작, 새로운 환경과 천천히 마주하기
단층 집들이 듬성듬성 위치한 시골동네에 나홀로 2층인 집이 있었다. 은퇴 후 귀촌을 선택한 언니, 동생 두 부부는 이 집을 사면서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깔끔하게 잘 고쳐진 집에서 마당도 가꾸며, 바람과 햇살을 느끼는 안온한 생활을 꿈꾸는 것과 동시에 도시의 아파트에서 살던 그들이 귀촌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지는 일이었다. 우리는 새롭게 고쳐지는 이 집이 시골생활의 적응을 위한 좋은 완충제 역할을 했으면 했다.
도시와는 달리 시골 생활이란 것은 이웃들을 내 영역으로 천천히 들이는 일 일지도 모른다. 기존의 집은 각 층의 주요 실 들이 모두 마당으로 활짝 열려있었다. 넓은 마당과 아늑한 집도 있지만, 잠옷차림으로 거실 창을 활짝 열면 지나가는 동네주민과 눈이 마주치고, 어색한 인사를 나누는 상황이 종종 일어난다. 이럴때는 넓은 마당도 내 집 같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고즈넉한 시골 풍경을 앞에 두고 똑같이 커튼을 치고 살 요량이면 아파트의 삶과는 다를 바가 없었다. 이방인일 수 있는 이들이 천천히 마을에 다가가도록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이 집이 가져야할 태도는 무엇일까.
담장의 높이를 낮추고, 대문을 활짝 열어두려면 언제든 이웃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집과 마당의 사이
집은 마당으로 활짝 열려있고, 마당은 낮은 담을 두고 마을 길로 열려있었다. 우리는 1층 거실로부터 2.4m의 거리를 둔 마당에 5m 높이의 벽을 세웠다. 벽은 하늘로 열려있고, 먼 산을 향해 창을 냈다. 그렇게 집이 마당과 면하는 곳곳에 높고 낮은 벽들을 덧댄다.
이러면 집과 마당 사이에 집도 마당도 아닌 중간영역이 생겼다. 이 곳은 마을로부터 숨겨진 가족들만의 자유로운 외부공간인 안뜰이 된다.
1층의 안방과 거실은 안뜰을 통해 마당 너머의 하늘과 산으로 항상 열려있다. 벽에 난 다양한 크기의 개구부를 통해 거실-주방으로 바람을 들이고, 집 뒷편의 너른 논밭까지 시선이 통한다. 이를 통해 들어오는 햇볕의 궤적은 풍성한 깊이감을 만든다. 창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오롯이 하늘과 마주하게 된다. 안뜰에 단차를 두어 안방은 프라이빗한 기능을 유지하고, 벽을 통해 걸러진 빛이 내부를 적당히 밝히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 잠옷차림으로 커피잔 위에 뜬 구름을 보며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주방-다용도실에 면하는 조그만 뜰은 지붕이 있고, 외부로는 옆마당과 통한다. 텃밭에서 기른 흙이 묻은 채소들이 거실을 넘어오지 않아도 되고,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외출복으로 갈아입어야하는 불상사도 없다.
벽을 따라 외부 계단을 오르면, 숨이 가빠올때 쯤 큰 창을 마주한다. 창 너머 아름드리 나무가 있는 이웃의 한옥집이 그림같이 보이고, 2층 현관에 다다른다. 2층은 지상의 마당을 직접적으로 누리지 못하지만, 못지않은 테라스를 두었다. 기존의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고, 멀리 산과 하늘이 산만하던 풍경 앞에 5m 높이의 벽으로 인해 넓은 테라스 너머에 난간 높이의 장막이 생긴 샘이다. 외부로부터의 시선은 차단하고, 그 위로 먼 산등성이가 병풍처럼 집 안으로 가까이 들어온다.
닫힘으로써 열린 집
시골 마을에 흰 덩어리의 2층 집이 새로 태어났다. 주변의 집들과는 다른 모습 때문에 마을 풍경 속의 오브제로 존재한다. 흰색은 빛이 존재하는 모든 지점에, 다르게 존재한다. 캔버스같은 이 집이 사계절, 시시각각 변하는 마을의 풍경을 담아내는 열린 집이기를 희망했다.
앞서 시골생활에 적응한다는 것은 이웃들을 내 영역으로 천천히 들이는 일이라 했다. 마당도 집도 물리적으로는 사적인 영역이지만, 이 영역안에서 최소한의 사적인 외부공간을 확보해 최대한의 공적인 외부공간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그것이 닫힘으로써 열린 집이 아닐까. 건축주 부부의 푸근한 마음이 이 집의 마당을 너머 시골동네에 닿기를 바란다.